엔지니어로서의 인생 설계
-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김종원
공학설계는 (1) 체계적인 마케팅을 통해서 고객이 요구하는 기능과 제한조건들을 수렴해서 신제품에 대한 고객 요구사항목록을 만드는 ‘제품기획’, (2) 고객 요구사항목록을 충족할 수 있는 설계대안들을 최대한 많이 창안하고 그 중에서 가장 적합한 최종 설계대안을 선정하는 ‘개념설계’, (3) 최종 설계대안을 구체화해서 시제품 레이아웃으로 완성하며, 공학적 해석을 거쳐서 고객이 요구하는 기능과 제한조건들을 충족하는지를 검증하고, 시제품 레이아웃을 이용해서 시제품을 만들고 견실최적설계를 수행해서 그 결과를 바탕으로 최종적인 제품 레이아웃을 확정하는 ‘기본설계’ 및 (4) 제품 레이아웃을 이용해서 제조현장에 출도할 제품제작도면(상세한 조립도 및 부품도)과 자재소요서를 완성하는 ‘상세설계’의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
특히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신제품을 설계하는 창의적 설계의 경우에는 위의 네 단계에서 개념설계 및 기본설계 단계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설계와 기본설계는 체계적인 방법론을 기반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본 교재에서 주로 다루었던 방법론은 크게 아래의 두 종류이다:
베를린 공대의 Beitz 교수가 쓴 ‘Engineering Design - A Systematic Approach(출판사: Springer, 1996)'라는 교재에서 제시한 방법론.
Taguchi 박사의 ‘Taguchi on Robust Technology Development(출판사: ASME Press, 1993)'라는 교재에서 제시한 견실설계 방법론.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위의 교재에서 기술한 방법론을 옮기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본 교재에서는 이러한 핵심적 개념이 무엇인지 먼저 기술하고, 다양한 사례들을 이용해서 이러한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적용하는 수순과 각 단계에서 유의해야 하는 사항들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방법론을 잘 활용하면 창의적인 신제품 개발을 좀 더 체계적으로 좀 더 짧은 시간에 수행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이제 마지막 결론으로서 본 교재를 읽은 학생들에게 선배의 입장에서 엔지니어로서의 인생 설계에 대해서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주고 본 교재를 끝내려고 한다.
12.1 인생과 비선형 동역학 시스템
그림 12-1과 같이 분기선 B-B를 갖는 비선형 동역학 시스템으로부터 얻어지는 궤적을 한번 생각해보자.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점 x는 분기선 B-B를 향해서 이동하다가 분기선 B-B를 만나면 PL, PU, NU, NL 등의 여러 가지 수많은 궤적 중의 하나로 분기된다. 수많은 궤적 중에서 어느 것으로 분기되는지는 분기선 돌입 직전의 점 x의 상태에 따라서 결정된다. 점 x는 일정한 시간 뒤에 다시 분기선 B-B를 만나게 된다. 그러면 다시 분기선에서 돌입 직전의 상태에 따라서 PL, PU, NU, NL 등의 수많은 궤적 중의 하나로 분기된다. 분기선을 지나고 다음 번 분기선을 만나는 시간도 점 x의 상태에 따라서 정해진다.
조금 거창한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비선형 동역학 시스템은 우리 인생에 대한 모델링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서 그림 12-1의 궤적 중에서 PL, PU 등을 포함하는 왼쪽의 궤적들은 ‘행복한 감정을 갖는 상태’를 나타내며, NU, NL 등을 포함하는 오른쪽의 궤적들은 ‘불행한 감정을 갖는 상태’이며, 각 궤적들 중에서 바깥쪽은 그 중에서 더 좋고, 안으로 갈수록 더 나쁘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내가 바로 점 x로서 이러한 비선형 동역학 시스템의 궤적을 시간을 따라서 움직인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내가 PU의 궤적에 있는 순간은 매우 행복한 상태가 되며, NL의 궤적에 있는 순간에는 너무나 불행한 상태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림 12-1 분기선 B-B를 갖는 동역학 시스템으로부터 얻어지는 궤적
점 x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분기선을 지나면서 분기를 거듭하는 것과 같이 나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수많은 매우 다양한 분기선을 만나고 분기를 거듭한다. 그리고 분기선에서 어디로 분기되는가에 따라서 미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매우 사소한 영향만 받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학생식당에 가서 메뉴 A를 먹을 것인지 메뉴 B를 먹을 것인지 결정하는 순간을 생각해보자. 식당에 들어가는 순간은 분기선에 막 돌입하는 때와 같다. 그리고 무엇을 먹을 것인지 결정해서 말하는 순간이 바로 분기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것은 미래에 미칠 영향이 그렇게 크지 않다고 생각되는 사소한 분기선이다(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식생활 습관의 하나이므로). 그런데 대학입시를 보는 순간은 보편적으로 매우 크고 중대한 분기선으로 생각된다. 합격이라는 궤도로 분기되는지 아니면 불합격이라는 궤도로 분기되는지는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편 어느 날 첫 담배를 만나게 되는 순간도 중대한 분기선일 수 있다. 그 때 담배를 피우느냐 아니냐가 이후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인생을 살면서 지속적으로 크고 작은 분기선을 만나며, 분기선에서 내가 어떠한 결정을 하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나 사물(들)에 의해서 나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결정 결과에 따라서 분기선 이후에 PL, PU, NU, NL 등의 여러 가지 수많은 궤적 중의 하나로 분기된다. 나는 PU의 궤적에서 분기선을 만나서 다시 PU의 궤적으로 분기되면 계속 가장 행복한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그러나 내가 NL의 궤적에서 분기선을 만나서 다시 NL의 궤적으로 분기되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상태로 괴로움을 계속 느끼는 상태로 고립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인생이 그림 12-1과 같은 모델이라면 인생은 분기선을 만날 때마다 왼쪽 궤적과 오른쪽 궤적을 넘나들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여지가 있기 때문에 엄청나게 행복할 때에는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고 경계해야 하며, 지금 당장은 죽고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괴로울지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현실을 극복할 힘을 내야하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그림 12-1의 모델은 여러 가지로 비유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왼쪽과 오른쪽 궤적을 ‘남녀간에 느끼는 사랑의 크기’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왼쪽은 ‘서로 좋아하는 상태’이고 오른쪽은 ‘서로 미워하는 상태’라고 한다면 남녀간에 느끼는 사랑의 크기는 끊임없이 만나는 분기선마다 달라진다. 인생은 비선형 시스템인 것이다. 만일 인생이 선형 시스템이라면 남녀간에 느끼는 사랑의 크기는 만나는 시간에 비례해서 선형적으로 커져야 한다. 그런데 어디 그런가? 어떤 때는 서로 좋아서 죽고 못 사는 상태가 있지만 그런 상태에서 두 사람이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분기선을 같이 만났는데 갑자기 오른쪽 궤적으로 분기되어 서로 너무나 싫어하는 상태로 갈 수도 있다. 그리고는 “그 분기선이 사소한 것이 아니었구나.“라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림 12-1의 모델은 날씨의 상태로도 해석할 수 있다. 위의 사랑의 크기를 모델링할 경우에는 분기선을 통과하고 그 다음 분기선이 돌아오는 주기가 매우 불규칙하지만 날씨의 경우에는 그 주기를 1일로 고정시킬 수 있다. 그리고 왼쪽 궤적은 ‘해가 쪼이는 좋은 상태’, 오른쪽 궤적은 ‘비/눈이 오는 나쁜 상태’로 생각해보자. 특히 구름 한점 없고 해가 좋은 상태는 특히 PU의 궤적이며, 비가 엄청나게 오고 바람이 심한 상태는 NL의 궤적이다. 날씨는 1일을 주기로 해서 분기를 계속하며 기상청은 이 날씨를 예측하느라고 고생을 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비선형 동역학 시스템을 다루고 있으므로 그 고생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오히려 온난화 현상으로 그 고생은 더 심해질 것이니 그것이 더 큰 문제이다.
주관적이며 인생관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림 12-1의 모델을 ’내가 엔지니어로서 인생을 살면서 나의 직업에 대해서 느끼는 성공과 실패의 크기’로 비유할 수도 있다. 왼쪽 궤적은 성공했다고 느끼는 상태이며, 오른쪽 궤적은 실패했다고 느끼는 상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면 과연 이 글을 읽는 학생은 미래에 어느 궤적에 주로 많은 시간 남아있기를 바라는가? 당연히 왼쪽 궤적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일어나는 조금 먼 미래의 일이므로 지금 당장 내가 미래에 어느 궤적에 남아있을 것인지 예측을 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있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이것에 대해서 좀 토의해보기로 한다.
그림 12-2 비선형 동역학 시스템 속에서 분기를 반복하면서 퍼져나가는 점들의 모습
그런데 여기서 먼저 그림 12-1과 같은 비선형 동역학 시스템은 어떤 특성이 가지고 있는지를 좀 알아보기로 하자. 그림 12-2(a)와 같이 t=0에서 점 x 부근에 수많은 점들이 압축이 되어 모여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지점을 확대해보면 수많은 점들이 한 지점에 완벽하게 하나로 겹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조금씩이라도 서로 위치가 다르다고 가정한다. 즉, 어느 두 점도 서로 완벽하게 일치된 상태를 공유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서로 아주 조금씩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제 수많은 점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그림 12-2(b)와 같이 분기선 방향으로 시스템 내에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그림 12-2(c)와 같이 t=1과 2 사이에서 처음으로 분기선을 만나면서 분기가 일어난다. 그리고 분기선을 지난 수많은 점들은 분기되는 궤적에 따라서 시스템 내부를 순환하다가 다시 분기선을 만나게 되며 이러한 분기를 거듭하면서 각각의 점은 시스템 내부로 퍼져나가게 된다. 그래서 임의의 시간 t=n에서는 그림 12-2(d)와 같이 시스템 내부 전체에 분포하며 이동하게 된다. 그러나 어떠한 점도 시스템 바깥으로 이탈하지는 않으며 그렇다고 어떠한 점도 다른 점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상태를 공유하지는 않는다.
그림 12-2(d)에서 t=n에서 관찰해보면 점 p와 점 q는 서로 매우 다른 상태에 놓여있다. 실제로는 이 두 점은 t=0에서는 그림 12-2(a)에서와 같이 점 x 부근에서 서로 아주 가깝게 놓여 있던 점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가깝게 있던 두 점 p와 q는 왜 t=n에서는 이렇게 극과 극으로 다른 상태가 되었는가? 원인은 바로 초기조건의 미소한 차이에 있다. 비록 t=0에서 두 점 p와 q가 점 x 부근에서 서로 아주 가깝게 놓여 있던 점들이었다고 해도 아주 작은 양만큼은 초기조건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그 차이에 의해서 어떤 분기선에서 하나는 왼쪽 궤적으로 가고 하나는 오른쪽 궤적으로 가버리게 되는 순간 갑자기 그 상태가 극과 극으로 달라진다. 이렇게 분기를 거듭하다가 보면 t=n에서는 이렇게 극과 극으로 다른 상태가 된다.
아마도 이런 일은 이론적으로나 가능하지 내가 사는 인생살이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있을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예를 들어서 지금 이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도 점 x 부근에 몰려있는 점들과 같다. 어느 특정 시공간에 밀집해서 가깝게 몰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강의실 내에서 앉아 있는 위치만큼 초기조건이 약간씩 다르다.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두 학생도 떨어져 있는 그 작은 거리만큼 초기조건이 다르다. 이렇게 본다면 강의실 앞에 앉아 있는 학생과 뒤에 앉아 있는 학생은 초기조건이 상대적으로 큰 차이가 난다. 이러한 초기조건의 차이가 학기말에 평균성적 0.1점 차이를 가져오고, 이 작은 차이로 A학점과 B학점으로 분기되며 이것이 또 최종 졸업학점에서 또 작은 차이를 낳게 되고 그 차이가 두 사람의 상태를 어느 순간 정반대의 궤적으로 분기시킬 수 있다. 매년 대학입시에서도 1점 차이로 합격과 불합격으로 분기된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지를 않는가? 그렇다면 사소하다고 생각되었던 그 말 한마디는 절대로 사소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비선형 동역학 시스템의 특성이다. 비선형 동역학 시스템은 초기조건에 대해서 민감하다.
일정한 시간 후에 수많은 상태들 중에서 어떤 특정 상태에 도달하였는지는 초기조건에 따라서 결정된다. 서로 매우 가까운 초기조건들로부터 출발하였을지라도 일정한 시간 후에는 전혀 다른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초기조건에 대한 민감성은 비선형 동역학 시스템의 중요한 특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비선형 동역학 시스템에서는 먼 미래의 상태를 예측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기상청이 정확하게 1년 뒤 오늘의 날씨를 장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반면에 외란을 받지 않는 완벽한 선형 동역학 시스템(예를 들어서 스프링-질량 시스템과 같은 것)이라면 100년 뒤의 상태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 기상청이 1년 뒤 오늘의 특정 시간에서의 태양의 위치는 장담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인생이 비선형 동역학 시스템이라면 인생살이도 초기조건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초기조건이라는 것이 태어날 때 부모를 잘 만나서 태어나는 그런 탄생했을 때의 나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항상 현재의 나의 상태가 초기조건이 된다. 오늘 지금 이 시간에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가 바로 다가올 미래의 상태를 결정하는 초기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초기조건에 민감한 것이 바로 인생이다.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오늘의 그 무엇이 미래의 상태를 결정하는 초기조건이 되어 미래에 가서 오늘을 생각할 때 그 때 그것이 나에게는 정말로 중요한 초기조건이었다고 깨닫게 된다.
그러면 이쯤에서 인생에 있어서 초기조건의 민감성이 미치는 영향에 관한 토의는 조금 뒤로 미루고 그림 12-1의 모델로 돌아가기로 한다. 앞에서 이 모델을 ’내가 엔지니어로서 인생을 살면서 나의 직업에 대해서 느끼는 성공과 실패의 정도’로 비유할 수도 있다고 했다. 왼쪽 궤적은 성공했다고 느끼는 상태이며, 오른쪽 궤적은 실패했다고 느끼는 상태라고 생각한다면 그림 12-2(d)에서 점 p는 매우 실패했다고 느끼는 상태이며, 점 q는 매우 성공했다고 느끼는 상태이다. 그러면 나는 미래에 점 p 또는 점 q 중에서 어느 상태에 놓이게 될까? 먼 미래의 상태이므로 그것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이왕 한번 죽는 인생인데 미래에 점 q에 놓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적이다. 특히 사회에서는 ‘이공계 기피 현상’이니 뭐니 하면서 떠드는데 이렇게 공과대학에 진학한 나로서는 엔지니어로서 점 q에 놓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니 그것이 과연 나에게 가능은 한 것인가?
12.2 꿈꾸는 공대생
이 책을 읽는 학생들은 곧 교정을 떠나서 사회로 나갈 것이다. 그런데 졸업 후에 대학원을 진학하든 산업체에 취직을 하든지 그것은 당장 눈앞의 진로일 뿐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과연 20년 뒤에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일과 연구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 확실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러한 나의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이 없이 이 순간 그저 학기말 고사나 취업에 필요한 준비만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과연 학기말 고사나 취업을 위한 영어 공부를 하는 정도의 시간과 노력만이라도 자기만의 꿈과 비전을 굳히기 위해서 투자를 해보았는지 잘 모르겠다. 한번만이라도 대기업을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엔지니어 출신의 CEO가 쓴 책을 읽고 나도 20년 뒤에는 바로 이런 모습이 되고 싶다고 꿈꾸는 노력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저 이공계 기피 현상이라는 현실에 좌절하면서 20년 뒤에는 없어지겠지 하는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점점 더 포화 상태로 치닫는 경제 현실에서 아무런 꿈과 비전 없이 그저 친구들이 하는 말이나 언론에서 떠드는 피상적인 기사에 자기의 소중한 미래를 맡기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이 된다.
공대에 들어와서 여전히 평균적인 위치의 엔지니어의 모습을 자기 미래의 소박한 꿈으로 삼고 나도 20년 뒤에는 혹시 회사에서 잘려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막연한 불안감으로 졸업을 기다리지나 않는지 걱정이 된다. 왜 20년 뒤에 top 1% 이내에 드는 CEO, 전문 연구직, 교수, 창업가 등을 꿈꾸지 않는가? 왜 지금 이 순간 나 나름대로의 큰바위얼굴을 그리지 않는가? 왜 사회 현상만 탓하고 있는가? 과연 나는 얼마나 나 자신의 꿈과 비전을 확실히 세우기 위해서 시간과 노력을 투입했던가?
엔지니어로서 20년 뒤의 내 모습으로서 그림 12-3과 같이 결국 크게 다섯 종류의 모습을 꿈꿀 수 있다:
그림 12-3 엔지니어로서 실현할 수 있는 20년 뒤의 나의 다섯 가지 모습
여기서 제발 “내가 과연 그런 모습이 과연 될 수 있겠나?”라는 소리는 좀 하지 말기 바란다. 큰바위얼굴 소년은 자기가 큰바위얼굴이 될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나다니얼 호손의 “큰바위얼굴”이라는 단편소설 참조). 그리고 그렇게 자기 모습에 대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20년 뒤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고 싶다. 축구 선수는 골대가 있기 때문에 90분 동안 죽을힘을 다해서 공을 찬다. 학생들은 A학점을 꿈꾸기 때문에 죽을힘을 다해서 시험공부를 한다. 고등학생들은 명문대학교에 합격하기 위해서 죽을힘을 다한다.
“내가 과연 그런 모습이 될 수 있겠나, 어림도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모두 다 공을 넣는 것도 아니고, 시험도 다 잘 보는 것은 아니며, 명문대학교 말고도 다른 대학도 많은데 왜 내가 꼭 공을 넣고, 시험도 잘 보고, 명문대학교에 들어갈 필요가 있는가?”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가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을 단 한번 사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20년 뒤를 맞이하게 되며, 결국 아무런 꿈과 비전이 없이 살아가도 결국 20년 뒤에 어떠한 모습으로는 되어 있을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해서 그냥 그렇게 살다가 20년 뒤에 그냥 되는대로 평균치기로 살면서 그 때도 여전히 이 놈의 사회가 이래서 안 된다고 푸념할 것인가? 그 때 가서도 여전히 이공계 기피 현상을 만든 사회를 보고 책임을 지라고 할 것인가?
위의 다섯 가지의 모습 중에서 어떠한 것도 내 가슴에 공진과 같이 와 닿는 모습이 없으면 하루 속히 엔지니어가 아닌 다른 길로 가야 한다. 그래 다 좋다. 그런데 한 가지 정말로 묻고 싶은 것은 학기말 고사나 취업을 위해서 영어 공부하는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서 위의 다섯 가지 길을 간 사람이 쓴 책도 읽고 인터넷도 검색하고 하면서 엔지니어로서의 자네의 꿈과 비전을 만들기 위해서 손톱만큼의 노력은 해보았는지 하는 것이다. 혹시나 부모나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그저 지나가면서 던지는 그 한마디에 “엔지니어로서는 나는 이런 모습이 될 것이야.”라고 하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그저 언론에서 걱정하는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해서 나도 같이 걱정하며 주저앉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이공계 기피 현상보다도 더 걱정스러운 것은 내 가슴 속에 강력한 꿈과 비전이 없는 것이다.
도대체 내 인생은 누가 살아 주는가? 친구가, 부모가, 언론이? 도대체 나의 꿈과 비전을 누가 만들어 주는가? 친구가, 부모가, 언론이? 꿈과 비전은 참으로 만들기 어려운 것이다. 역학 문제 풀듯이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학기 중에는 힘이 들겠지만 방학 동안에는 필사적인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서 위의 다섯 가지 길을 가고 있는 현재의 선배들이 쓴 책들을 위인전처럼 읽거나, 인터넷을 뒤지거나, 직접 인터뷰를 해서라도 그 사람들이 어떻게 각각 그 길로 갔으며, 지금 과연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표 12-1은 그저 하나의 예로 들 수 있는 ‘꿈을 만드는 도서목록’임, 제 1장 연습문제 2, 7, 8, 9, 10도 참조할 것.). 대기업 CEO, 기술기반 창업가, 연구소 전문연구직, 교수, 전문행정가 등의 다섯 가지 모습에 대해서 적어도 각각 세 사람 정도를 정해서 철저하게 그 사람에 대해서 탐구를 해보라는 말이다. 스티브 잡스를 모르고 어떻게 기술기반 창업가가 되겠다고 할 것이며, 화성 탐사선 프로젝트 팀장이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모르고서 어떻게 연구소 전문연구직이 되겠다고 할 것인가? 빌 게이츠가 돈 많이 버는 것은 대충은 알고 있겠지만, 그 밖의 성공한 기술기반 창업가는 과연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알고는 있는가?
다섯 가지 길을 간 사람들의 모습을 상세하게 알면 알수록 점점 더 나 나름대로의 20년 뒤의 모습이 그래도 더 확실하게 잡힐 것이다. 이것은 마치 5명의 여자 또는 남자 친구 후보들 중에서 누구를 마지막에 선택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과 같다. 각 5명을 만나보고 이야기 해보고 해서 점점 더 잘 알수록 이 여자 또는 남자야 말로 정말로 내 친구로 삼고 싶다 하는 마음이 확실해 진다. 그런 노력도 없이 그저 겉보기 모습으로 어떻게 최종 결정을 할 것인가? 나 나름대로의 꿈과 비전을 정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언론이나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피상적인 모습으로 어떻게 나의 소중한 꿈과 비전을 결정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결정한들 그것은 강력한 꿈과 비전이 되지도 못한다.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서 많은 책들을 읽은 후에 그 모습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느끼고 제대로 알아야 비로소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나 나름대로의 꿈과 비전을 결정하는 것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도의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결정이다. 그러나 그 꿈과 비전은 가슴 벅찬 그런 것이다. 그러나 실현하기에는 지금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그런 것이다. 그렇지만, “아 정말로 나는 이런 사람과 같은 굉장한 모습이 되고 싶다.”고 하는 그런 role model이 될 사람들을 필사적인 노력을 해서 찾아야 한다. 술 먹고 방구석에 쳐 박혀서 천장만 쳐다보면 꿈과 비전이 가슴 속에 저절로 새겨지는 것이 아니다.
방학 동안에 영어회화 공부나 해야 하겠다고 마음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학 끝나고 학교로 돌아 올 때에는 이 가슴 속에 절대로 지워지지 않게 각인된 그런 꿈과 비전을 새기고 오겠다고 마음먹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담은 위인전들을 20-30권정도 배낭에 싸들고 다니면서 하나씩 읽으면서 내 가슴을 떨리게 만드는 그런 모습을 만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의 모습을 만나는 순간 나의 꿈과 비전이 확실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다음 학기에는 당장 무슨 과목을 수강할 지부터 시작해서, 군대는 언제 어떻게 가고, 대학원을 갈 것인지, 유학을 갈 것인지, 회사는 어떤 회사에 취직을 할 것인지 등등의 모든 결정이 쉬워질 것이며, 그 보다도 더 지금 이 순간 자네가 하고 있는 모든 공부와 사회 활동에 대한 의미가 생기며, 비로소 고등학교 3학년 때처럼 또다시 미래를 위해서 죽을힘을 다 해야 하겠다고 하는 동기가 생길 것이다.
표 12-1 엔지니어로서 미래의 꿈을 만드는 도서목록
.. 이 목록은 전재하지 않음.. (by HF)
도대체 방학 동안에 영어회화 공부는 왜 하려고 하는가? 유학을 가기 위해서 토플 성적을 높이려고? 취업을 위해서 토익 성적을 높이려고? 이런 동기로 영어회화 공부하는 친구도 있을 것이지만, 20년 뒤에 global top class 대기업의 CEO로서 세계 각국에서 집결된 임원급 회의를 할 때를 위해서 영어회화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죽을힘을 다해서라도 잘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리고 국내 또는 외국 대학원이든지 석사 및 박사 공부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대체 20년 뒤의 어떤 나의 모습을 실현하기 위해서 대학원에 진학을 하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좋은 회사에 당장 취직을 하는 것이 급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의 20년 뒤에 어떤 모습을 위해서 그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려고 하는지 묻고 싶다.
아무리 지금 당장의 생활이 고달프고 힘이 들더라도 젊은이로서 나의 미래를 꿈꾸는 것은 하나의 특권이다. 그런데 젊은이로서 그러한 찬란한 꿈을 실현해서 20년 뒤에 global top 1% 리더가 되는 것은 하나의 의무사항이기도 하다. 그것은 남자라면 군대를 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게 나에게 지워지는 무거운 짐이기도 한 것이다.
12.3 꿈과 비전을 위해서라면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나의 꿈과 비전은 곧 나의 20년 뒤의 모습이다. 가상적으로 20년 뒤의 나의 모습을 공중에서 내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때 나는 엔지니어로서 어디에서 무슨 직업의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을 것인가? 그 모습은 크게 앞에서 설명한 다섯 가지 모습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20년 뒤에는 세계화가 더욱 진행되어 나는 틀림없이 세계를 무대로 활동을 하며 세계 중의 어느 나라에서 무언가 global top 1% 리더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그런 내 모습이 될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런 강력한 꿈과 비전이 가슴 속에 각인이 되어 있어야 하는가? 제 12.1절에서 우리 인생이 비선형 동역학 시스템이라면 인생살이도 초기조건에 매우 민감하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초기조건이라는 것이 태어날 때의 나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현재의 나의 상태가 초기조건이 된다고 했다. 오늘 지금 이 시간에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가 바로 다가올 미래의 상태를 결정하는 초기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림 12-4 꿈과 비전을 위해서라면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물러서지 말라.
나는 인생을 살면서 그림 12-4와 같이 내 가슴 속의 꿈과 비전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문턱을 만나게 된다. 대학 입시를 통과하는 것, 숙제를 내는 것, 학기말 고사를 보는 것,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 영어회화 공부 등록을 하는 것, 자격시험에 붙는 것, 대학원 입시에 합격하는 것 등 크고 작은 문턱을 만난다. 이것은 제 12.1절에서 설명한 분기선과 같은 것이다. 문턱을 지날 때마다 나의 상태는 분기된다. 그런데 문턱을 지날 때마다 나의 꿈과 비전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분기되는 것을 거듭하다가 보면 결국 꿈과 비전을 실현하는 것에 점점 더 가까워지게 된다.
그렇다면 우선 지금 이 순간의 나의 상태가 꿈과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문턱에 진입하고 있는 상태에 해당되는지를 항상 인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아 지금 문턱에 진입하고 있구나.”하고 느끼는 순간에는 정신을 차리고 죽을힘을 다해서 그것을 돌파해서 꿈과 비전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분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세상에 나오는 것도 일종의 문턱을 돌파하는 것과 같다. 어떤 병아리는 눈앞에 나타난 껍질을 보고 지금이 바로 이것을 깨고 세상에 나가야 하는 문턱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그 때부터 죽을힘을 다해서 바로 껍질을 깨고 세상에 나간다. 그런데 어떤 병아리는 껍질이 눈에 보여도 이것이 문턱인지 아닌지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심심하면 본능적으로 껍질을 깨는 흉내나 낸다. 그러다가 껍질에 가해진 에너지의 총합이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껍질은 깨지고 세상에 나가게 된다. 그러나 세상에 나가고 보면 이미 이전에 나온 병아리들이 좋은 자리는 다 차지하고 있고 이미 꽤 큰 병아리가 많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는 자기 잘못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세상만 탓한다. 나도 껍질을 깨기 위해서 노력을 했는데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 여기서 이 병아리는 문턱을 돌파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의 총합만을 생각했지 어느 순간 내는 최대 파워(power)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단위 시간당 최대 에너지를 내는 것을 최대 파워를 낸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죽을힘을 다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차피 껍질을 깨고 나갈 것이면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 지금 문턱이 다가왔다고 인지하고 죽을힘을 다해서 껍질을 깨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분기하도록 해야 한다. 죽을힘을 발휘해서 문턱을 돌파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분기하고는 잠시 쉰다. 그런데 뒤에 나온 멍청한 병아리는 껍질을 깨기 위해서 발휘한 에너지의 총합은 동일하게 내기는 했지만 죽을힘을 다해서 최대 파워를 내지는 않았던 것이다. 왜? 최대 파워를 내면서 느끼는 괴로움이 싫었던지 아니면 아예 지금이 최대 파워를 내야하는 문턱이라는 것을 몰랐던지 둘 중의 하나이이다. 아니면 두 개가 다 이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에게 주어진 에너지의 총합은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공평하다. 그러나 죽을힘을 다하는 최대 파워를 발휘할 때의 괴로움을 견디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는 인생은 불공평하다. 특히 이 세상에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문턱이 나에게 미래에 꿈과 비전을 실현하는데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인생은 초기조건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다가오는 문턱이 미래의 꿈과 비전을 달성하는데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이 조금이라도 간다면 그것이 당장에는 아무리 사소하다고 생각이 되어도 절대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말고 죽을힘을 다해서 돌파해야 한다. 그리고 한번 죽을힘을 다해서 문턱을 넘은 경험이 생기면 더 큰 문턱도 넘을 수 있다. 문턱을 넘는 메커니즘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너무 피곤한데 이번 숙제 하나는 제출하지 말고 넘어갈까?”라고 생각하고 포기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 숙제가 학점에 미치는 영향, 더구나 미래의 꿈과 비전을 실현하는 것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너무나 사소하다고 생각되지만, 과연 그것이 정말로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인생 자체가 비선형 동역학 시스템으로서 초기조건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만일 숙제 하나로 총점에서 1점이 모자라서 A학점이 아니라 B학점으로 학기말에 분기되고, 이 과목의 학점이 한 등급 모자라는 것이 전체 졸업학점에 0.1점 영향을 미쳐서 나의 꿈과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 2년 뒤에 지원한 곳에 선택되어야 하는 문턱에서 탈락되는 방향으로 분기될 수도 있다. 인생은 이러한 비연속적인 분기를 만들어내는 문턱들의 파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느 문턱도 사소하다고 절대로 단정할 수 없다. 강의실에 들어와서 뒤에 앉겠다고 결정하는 것을 많은 학생들은 사소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그러한 결정이 계속된다면 그것은 제법 큰 초기조건의 차이를 만들며 그것이 미래에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그런데 앞에 앉는 것이 뒤에 앉는 것보다는 괴로운 일이므로 아무래도 앞에 앉는 괴로움을 택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는 좋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만나는 모든 문턱마다 진입 시점에서 죽을힘을 다해야 하는데 이렇게 만드는 것이 바로 나의 꿈과 비전이다. 강력한 꿈과 비전이 없으면 인간인 이상 괴로움을 감내하면 모든 문턱마다 죽을힘을 내지는 못한다. 아무 동기도 없이 죽을힘을 내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고등학생으로서 대학입시에 합격하기 위해서 죽을힘을 내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바로 1-2년 뒤의 명문대학교의 대학생이 되는 나의 모습을 꿈꾸었기 때문에 죽을힘을 다 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무엇을 위해서 죽을힘을 다하려고 하는가? 고등학생 패러다임으로 그냥 여전히 지금도 산다면 이제는 좋은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서 죽을힘을 다해야 맞다. 그런데 과연 지금 죽을힘을 다한다고 할 수 있는가? 아마도 자기가 낼 수 있는 최대 파워 중에서 50%나 낼지 말지 할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은 꿈 치고는 20년 뒤의 굉장한 모습이 되는 것보다는 그래도 쉬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턱마다 무슨 죽을힘이 나오겠는가? 이제는 20년 뒤의 나의 굉장한 모습을 그리며 살아야 할 시기이다. 오로지 1-2년 뒤만을 생각하는 좁은 시야로 살던 고등학생 패러다임은 이제 저 멀리 치우고, 이제는 20년 뒤를 생각하는 넓은 시야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오직 하나 남은 내 인생의 마지막 굉장한 꿈과 비전을 위해서 죽을힘을 다해야 할 시기이다. 좋은 대학원에 진학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은 그 굉장한 꿈과 비전을 실현하기위한 전략일 뿐이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강력한 꿈과 비전을 만들기 위해서 우선 죽을힘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강력한 꿈과 비전은 지금 생각해서는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정말로 내가 되고 싶은 굉장한 꿈과 비전을 세우려고 하는 순간 또 다른 내가 뒤에서 바로 나의 목을 치게 마련이다. 그 시간은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 꿈과 비전을 세우려고 하는 순간 바로 “내가 할 수 있을까?”, “그걸 해서 도대체 무엇하나?”, “나는 이 사람과 같이 타고난 능력과 재능이 없어서.”, “그 사람은 천재라서 그렇게 된 것인데, 내가 어떻게 그렇게 되겠나?”, “이것 때문에 나는 할 수 없어.”, “그러면 그렇지 내가 별 수 있겠나?”, “이것은 내 적성에 맞지를 않아서.” 등등 많은 부정적 생각이 샘솟듯이 떠오르면서 또 다른 내가 나를 막는다. 그러나 이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 그러나 정말로 그 꿈과 비전이 점점 더 알고 보았더니 생각할수록 가슴이 벅찬 그런 것이라면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야 시끄럽다. 그래도 정말 나는 그런 굉장한 모습이 되고 싶다. 아직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는 없다.”라는 생각으로 계속 내려쳐야 한다.
그렇다, 나의 role model 누구처럼 나도 정말로 그런 굉장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이제부터 죽을힘을 다해서 해보는 거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죽을힘을 다해서 해보지도 않고 이것 자르고 저것 자르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 “엔지니어는 의사보다 월급이 작다.”, “대기업에 엔지니어로 입사하면 50대 나이에 그만두게 되고 그러면 살길이 막막하다.”, “명문대학교를 나와야 무언가 되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평균치기 사고방식이다. 그렇다. 인생을 살면서 문턱을 인지하고 그 순간만은 죽을힘을 다하지 않으면 늦게 껍질을 깨고 세상에 나온 병아리처럼 아무리 명문대학교를 졸업해도 평균치기나 오히려 그 이하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시절에 가슴 벅찬 꿈과 비전을 만들어서 가슴에 각인하고 다가오는 크고 작은 문턱에서 죽을힘을 다해서 포기하지 않는다면 미래에 결국 그 가슴 벅찬 꿈과 비전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고도의 비선형 동역학 시스템이다. 초기조건에 민감해서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차피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 세상에 던져진 이상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본인이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현재의 상태가 바로 미래의 상태를 결정하는 초기조건이 된다. 이러한 생각으로 가슴 벅찬 꿈과 비전을 되도록 빨리 세우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문턱마다 결코 포기하지 말고 죽을힘을 다해서 이 책으로 공부한 학생들이 20년 뒤에는 굉장한 global top 1%의 훌륭한 엔지니어 리더가 되어 있기를 간곡히 기도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