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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5일 월요일

The God Delusion /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
Richard Dawkins

I'm a fan of Richard Dawkins since his "Selfish Gene". He yells in this book, "The God Delusion", that there is no evidence that God exists. Religion is mere a anthropological thing which lacks rationality and we should not raise our children with its irrationality absentmindedly, he assures. As in the case of his former book, I'm sold to him. This book might be not a science one. However, this book tries to answer or help to seek the solution to our eternal question of life.

"The Blind Watchmaker", his former book, is logical sequel to this book; In that, Dawkins explains "how the world came into existence without God." Both books are good. but I enjoyed the latter more since it's a science one and I favor scientific book recently.



"만들어진 신/이한음 옮김,김영사"
온라인 서점에서 60-70%세일을 하기에 쯧쯧 재고가 많이 남았구나 하며 들여온 책이다. 기독교인도 많고 먹고 살기 바쁜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제목의 책이 얼마나 어필하였을까. 리차드 도킨스라는 이름값으로 많이 팔린것 같지만 (30개월동안 48쇄면 많이 팔린 것 같다) 어느 한계를 넘어간 이후에는 재고로 변한 듯 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를 생각하게 된 내게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리차드 도킨스의 팬이기 때문이었기도 하고. (이기적 유전자는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자식을 많이 낳고 싶게 된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신의 존재에 대해 "만들어진 신"에서는 논증적인 측면으로 접근하였다. 즉 신이 존재한다는 대표적인 논증들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이다. 이 내용은 시간적으로 더 먼저 쓰여진 "눈먼 시계공"에서, "신이 없어도 이 세상은 이렇게 하여 탄생되었다"라는 내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두 책을 읽고 나의 의견은 다음과 같이 다시 바뀌었다.
  • 신의 존재를 믿지만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신은 아인슈타인이 말한 '존재의 질서 있는 조화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스피노자의 신'이다.
  • 설계자가 없어도 일정 수준 복잡도를 생성할 수 있다는 다윈주의에 감탄하였다. 다윈주의를 모르고 있던 것이다. 과학적으로 제로가 아닌 가능성을 처음 알게 된 것이고, 관련된 책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책을 읽은 얼마 후, 조화의 신(?)에 대해 생겨버린 호기심에 웹을 서핑하다가 만난 미치오 카쿠의 "평행우주"를 주문하였다. 역시 50% 세일도서. 먼지를 부르는 논리와 과학에 잠시 묵념...
  • 어린시절 아내는 학교를 몹시 싫어해서 차라리 퇴학당하기를 바랐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20대가 되었을 때 아내는 그 사실을 털어 놓았고 장모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 왜 그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니?" 아내의 대답이 바로 이 글을 쓴 동기가 되었다. "그래도 되는 줄 몰랐어요."
  • "나는 인간의 운명과 행위에 관여하는 신이 아니라, 존재의 질서 있는 조화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는다." - 아인슈타인
  • 종교집단의 대표자들이 영향력 있는 위원회나 라디오 토론회에 주요 패널로 참석한다. 나는 그런 인사들의 견해를 검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이 아니다. 하지만 왜 우리 사회는 그들이 마치 철학자나 변호사나 의사에 필적하는 전문지식을 가진 것처럼 그런 논쟁거리가 생길 때마다 그들에게 쪼르르 달려가는 것일까?
  • 신학자들이 어떤 전문 지식이 있기에 과학자들이 할 수 없는 심오한 우주론적 질문들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인가? ... 왜 과학자들은 자신들보다 신학자들이 그런 질문들에 대답할 자격을 더 많이 갖춘 것도 아닌데, 비겁할 정도로 공손하게 신학자들에게 그 질문들을 떠넘기는 것일까?
  •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 부터 파스칼 보이어의 '설명된 종교'나 스콧 애트런의 '우리가 믿는 신들'에 이르기까지. 인류학적으로 해박한 저서들은 미신과 종교 의식이라는 기이한 현상학을 흥미롭게 상세히 기술한다. 그런 책들을 읽어 보라. 그러면 인간이 얼마나 잘 속는지 놀랄 것이다.
  • 다윈주의적인 생존과 관련된 이유들 때문에, 아이의 뇌는 부모와, 부모가 믿으라고 말한 어른들을 믿어야 한다. 그로부터 자동적으로 도출되는 한 가지 결과는, 아이고 좋은 조언과 나쁜 조언을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 지향적 입장은 적어도 저차원에서는 설계적 입장과 마찬가지로 생존에 극히 중요할지 모르는 시간을 절약해준다. 따라서 자연선택은 지향적 입장을 지름길로 삼도록 뇌를 형성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행동을 하는 실체에게 의도를 갖다 붙이도록 생물학적으로 프로그램되어 있다.
  • 현재 우리는 개체들이 서로에게 이타적이고 관대하고 '도덕적'이 되려는 타당한 다윈주의적 이유를 네 가지 알고 있다. 첫째, 유전적 친족 관계라는 특수한 경우가 있다. 둘째, 호혜성이 있다. 받은 호의에 보답을 하고, 보답을 '예견'하면서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셋째, 관대하고 친절하다는 평판을 얻음으로써 누리게 되는 다윈주의적 혜택이다. 넷째, 자하비(물새의 종류)가 옳다면 과시적 관대함은 속일 수 없는 진정한 광고의 역할을 한다.
  • 종교는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한다. 그것이 있든 없든 선한 사람은 선행을 하고 나쁜 사람은 악행을 한다. 하지만 선한 사람이 악행을 한다면 그것은 종교 때문이다. - 스티븐 와인버그
  • 사람은 종교적 확신을 가졌을 때 가장 철저하고 자발적으로 악행을 저지른다. - 파스칼
  • 현대의 신 십계명 (한 무신론자 웹사이트로부터)
    1. 남들이 당신에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남에게 하지마라
    2. 매사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하라.
    3. 당신의 동료 인간들, 동료 생물들, 나아가 세계 전체를 사랑과 정직과 성실과 존경으로 대하라.
    4. 악을 못 본 척하지 말고 정의를 구현하는 데 주저하지 말라. 그러나 잘못된 행위를 솔직히 인정하고 진심으로 후회한다면 언제라도 용서할 준비를 하고 있으라.
    5. 기쁨과 경이로움을 느끼며 살아라.
    6. 늘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라.
    7. 모든 것을 시험하라. 늘 자신의 생각을 사실에 비추어 점검하고, 설령 소중히 믿는 것이라고 해도 사실에 부합되지 않으면 폐기할 태세를 갖추어라.
    8. 검열을 하지도, 이의를 막으려 하지도 말라. 다른 사람들의, 다른 의견을 낼 권리를 늘 존중하라.
    9. 자신의 이성과 경험을 토대로 독자적인 견해를 수립하라. 남들에게 맹목적으로 끌려 다니지 말라.
    10. 모든 것에 의문을 품어라.
  • 도킨스가 추가할 항목
    1. 자신의 성생활을 즐겨라(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2. 성, 인종 또는 종을 근거로 차별하거나 억압하지 말라.
    3. 아이들을 세뇌시키지말라. 그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법, 증거를 평가하는 법, 당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라.
    4. 자신의 생애보다 더 긴 시간 척도로 미래를 헤아려라.
  • 우리의 정치가들은 R로 시작하는 단어(religion)를 언급하는 것을 피하며, 대신 자신들의 싸움을 '테러'와의 전쟁이라고 규정짓는다.
  •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진정으로 유해한 것은 신앙 자체가 미덕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해위다. 신앙은 그 어떠한 정당화도 요구하지 않고 어떤 논증에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악이다. 의문을 품지 않는 신앙이 미덕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아이들을 미래의 성전이나 십자군 전쟁을 위한 치명적인 무기로 자라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 모든 마을에는 횃불이 있다. 바로 교사다. 그리고 그 횃불을 끄는 사람이 있다. 성직자가 그렇다. - 빅토르 위고
  • 왜 종교인들은 죽어가는 사람이 있을 때 그런 식(죽어서 천국에 가게되니 정말 좋겠어요)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일까?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척하는 것들을 사실 전혀 안 믿는 것은 아닐까?
  • 진정 어른다운 견해는 우리 삶이 우리가 선택한 만큼 의미있고 충만하고 경이롭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삶을 정말로 대단히 경이롭게 만들 수 있다.
  • 설계논증: 세계의 사물들, 특히 살아 있는 것들은 마치 설계된 듯이 보인다. 우리가 아는 것 중에 설계되지 않았으면서 설계된 듯이 보이는 것은 전혀 없다. 따라서 설계자가 있는 것이 분명하며, 우리는 그를 신이라고 부른다.
  • 진짜 의지 논증: 나는 신을 믿는다! 나는 진짜로 신을 믿는다! 믿고 믿고 또 믿는다. 나는 정말 정말 신을 믿는다! 따라서 신은 존재한다.
  • 정서적 공갈 논증: 신은 당신을 사랑한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이 무정하게 신을 믿지 않을 수 있는가? 따라서 신은 존재한다.
  • "재림이 임박했으므로 우리는 환경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 -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내무장관이 환경 정책에 대해
  • 크리스토퍼 히첸스의 '선교사의 위치: 이론과 현실의 마더 테레사'를 읽어봐야 한다.
  • 철두철미하다는 것이 장점일까 단점일까? 이 책을 번역하면서 가끔 그 의문이 떠올랐다. - 역자 이한음

2009년 4월 9일 목요일

Your Best Life Now

Another self-improvement book by Joel Osteen, a pastor of Lakewood church. The book told a story similar to various books. Noticeable difference is that Joel told a story by words of pastor. I haven't believe in God from my adulthood. I am not any fond of any Christianity. I go even further for Protestantism, which prevails in Korea, and don't like it, definitely. After attending a church for six or seven years in my childhood, I quit for not getting answers for following questions: (1) Why are only Israelis the Chosen people? (2) Is a man only helpless creature, really? Is God only meaning of his life in a consequence? (3) Does God exist?
For the same reason, I cannot easily pick up this book. The dust have sit on the book in my bookshelf over a year. Now, I feel that something has been changed.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것은 믿을 수 없다. 신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믿을 수 없다. 비록 비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지만, 그렇기때문에 믿고 안믿고를 떠나서 무관심해왔었다. 개신교 및 일부 기독교 종파의 선민사상 및 과열전도 등 때문에 특정 종파는 아예 혐오하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 밖에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 특별한 계시 같은 것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생각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복합 개체가 일정 수준 이상의 복잡도를 가지기 위해선 해당 복잡도를 부여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따라서 인간을 포함한 자연계는 누군가가 창조했다. 여기서 누군가를 “신” 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신이 세계를 창조하지 않으려면 다음의 두가지 선택지가 존재한다.
  1. 종의 기원 + 이기적 유전자 : 복합개체가 어떠한 요인으로든 다변화하여 선택과정에 들어간다. 적자생존과정에서 복잡도가 증가한 개체가 살아남는다. 복합 개체를 이루는 단일 요소들은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여러가지의 복합개체가 나타나고 선택 과정을 거쳐서 복잡도가 증가한 개체가 살아남을 수 있다.
  2. 세계는 창조되지 않았으며, 그냥 그 곳에 계속 있었다.
후자의 선택지는,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 라는 인과율과, 빅뱅의 증거들을 생각하여 머리속에서 소거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2번일 수도 있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러면 전자에서 복합개체를 다변화시키기 위한 요인은 개체를 구성하는 요소를의 선택 혹은 변화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은 “생명”의 여러가지 가능한 정의 중 하나이다. 만약 개체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복합체의 변화에 선택을 할 수 없다면 현 세계의 복잡도를 부여받기 위한 확률은 0에 가깝다. 하늘에서 모래를 뿌렸을 때 바다에 멋진 모래성이 쌓일 확률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러나 뿌려진 것이 모래가 아니라 생명체 - 예를들어 개미 - 라고 하면 개미들이 군체를 형성하여 멋진 구조물이 되거나 집을 지을 확률은 전자에 비해 현격히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면 신이 있는가에 대한 물음은 다시 ”원자들로 이루어진 원소들, 즉 무생물 요소가 어떻게 복합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요소, 즉 생물이 될 수 있었는가?” 에 대한 물음으로 바뀐다. 대답이 만약 “무생물 요소가 어느 복잡도를 넘어서면 생물이 될 수 있다.”라면 이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 때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복잡도의 절대적 한계치는 내려간다. 이를 반복할 경우 만약 신이 없다면 생명이 가지는 복잡도가 상당히 낮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현대 과학의 결론은 생명의 복잡도는 상당히 낮지 않다 라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까지의 현대 과학으로는 신은 존재한다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앞의 질문에서 대답이 만약 “무생물 요소가 생물이 되는 과정은 신의 섭리가 필요하다.”라면 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은 존재하는 것 같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은 누가 창조하였는가? 모든것에는 원인이 있다는 황금률에게는 신도 예외가 되지 못한다. 불교에서 말하듯이 신에도 단계가 있어서 상급의 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반복되면 결국 최상급 까지 올라가게 되는데 최상급 신은 누가 창조하였는가? 선택지는 두가지이다. (1) 신은 원래 계속 있었다. 창조 대상이 아니다. (2) 신은 신이 창조하였다이다. 정확히 말하면, 신은 그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 존재이다. (God is a meta-circular being.) (2)에서는 최초의 순간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시간이 무한하다면 최초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모순이 아니다. 그리고 귀납법으로 시간은 무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기독교의 신이 그 신인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럴 수도 있다. 신은 유일신인가? 그럴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신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비해서는 중요치 않다는 생각이다.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생각의 폭이 넓어진다는 생각이다. 아래의 “긍정의 힘“과 같은 책. 신을 인정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아예 버릴만한 책인데, 지금은 책 안에서 예전과는 다른 메세지를 보게 되는 것이다.


Your Best Life Now: 7 Steps to Living at Your Full Potential
Joel Osteen